이번 「건축평단」 봄호에 유걸 건축가의 글이 실렸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아래 내용 공유드립니다^^






건축평단 2017.봄 「반지역주의,반세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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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건축

“ARCHITECTURE OF DEMOCRACY”

유걸


인류는 지난 반세기 이상 평화로운 세상을 누려왔다. 폐쇄적 고립주의보다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열린사회의 혜택이 크다는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은 빈곤에서 해방되고 권력의 압재에서도 풀려나는 세상을 맞이한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고 인류보편가치를 확신하게도 만들어 주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고 또 평등하다는 인식은 사회가 산업화되고 현대화되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태동된다. 사회 계층의 벽이 무너지고 일부 계층이 누리던 부와 문화가 일반 대중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역을 넘어 세계의 모든 곳에서 추구된다. 이런 생각의 구현은 그의 반동 세력으로 참혹한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 이후의 세대는 번영의 시대를 반세기 이상 즐겨온 것이다. 계층 간의 차이는 자유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문제가 되지 않아지고 개인의 권리는 더 신장되어 왔다. 인종간의 벽을 없애려는 노력은 지속되었고 국가간의 빈곤의 격차도 꾸준히 좁혀져 왔다.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던 부와 권력이 분산되고 개인화 되는 과정이 일반적인 역사의 진행과정이라면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그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경험한 사람들이다. 산업화는 이 세계화된 풍요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수공업을 떠나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산품은 우리들 생활을 더 편하고 풍요롭게 하여준다. 생활용품이나 교통과 통신수단의 기술도 많은 발전을 하면서 우리는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의복을 입고 편하게 살면서 새로운 교통통신수단으로 세계가 하나가 된 생활을 한다. 일정한 일을 하고 있는 많은 개인들은 사실 예전에 왕이 누리던 식생활보다 나쁘지 않은 음식들을 즐긴다. 사회의 축적된 부는 교통, 통신, 에너지, 유틸리티 등의 기간 시설을 건설하고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고 여가에 문화를 즐기고 의료와 교육이 공급되는 도시들은 세계화와 함께 엄청난 성장을 하면서 도시의 승리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 평화와 번영의 기간 우리들은 또 다른 미래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아온다. IT 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 기술의 변혁이 빠르게 우리들의 모든 생활을 바꾸고 있다. 연산기술,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까지의 기술들은 우리 생활의 변화가 어디까지가 될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이 기술들은 우리를 지금까지 잘 살게 하여준 산업사회의 모든 것을 구조적인 것부터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사회가 기여하고 있던 많은 것과 함께 그것이 넘으려고 하던 한계와 또 그것이 갖고 온 문제들을 다 뛰어넘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 풍요와 편리는 새로운 문제를 키워 오기도 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풍요로운 생활환경이 사람들의 수명을 계속 연장 시키면서 세대 간 인구 분포를 급격히 바꾸어 놓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세대 간 갈등을 빚기도 한다. 풍요로움도 모두가 같은 풍요가 아니다 보니 빈부의 차이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갈등도 사회문제로 대두 된다. 기술의 발전에 의한 직업형태의 변화는 안정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게 만들고 젊은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출처가 다른 정보의 홍수는 그 정보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고 정보를 소유할 권리를 갖게 된 개인들은 상반된 정보들로 혼돈되어 가기도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건축에서 극단적으로 두드러진다.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명의 혜택이나 또는 그것들의 병폐는 건축에서 그 현상이 극명하게 들어난다. 건축은 점점 가진 자들의 몫이 되고, 건축가들의 서비스는 부와 권력이 있는 곳으로 집중되어 왔다. 기술의 발달과 산업화 된 의식주를 위한 수단 중 유독 건축은 이 기술과 유리된 체 변화하는 세상과 무관하게 옛 것에 머무르고 있다. 건축의 문제는 건축이 문제를 갖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사람들은 변화에 늘 수동적이다. 관습에 의해서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해서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습이 바뀌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런 중에도 한국 사람들은 특히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변을 미화하기도 한다. 변절을 죄악시 하면서 절개를 귀히 여기고 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결함이 있는 증거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늘 푸른 소나무나 곳곳한 대나무를 사랑하는 것도 변화를 기피하는 한국 문화의 성향을 들어낸다. 그래서 건축의 지속성을 천년건축으로 변질시켜 찬양하기도 한다. 과거에서 삶이나 가치의 전형을 찾으려는 것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성향과 연계되어 있는 현상이다. 과거에서 전형을 찾는다거나 과거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려 하는 성향은 동양의 삼국 한중일이 닮은 점이 있어서 이들 삼국의 관계는 항상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과거로 늘 회귀하려는 성향은 한국이 가장 심하다. 현실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해법이 잘 안보이면 우리는 곳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과거에서 답을 찾아보려는 것은 한국인 모두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다. 과거 또는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역사의 선례에서 전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논리적이고 참된 명제를 얻기 위함이기보다는 나를 정당화 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현실을 왜곡시키기도 하는데 소위 지식인들이나 철학자 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런 믿음을 더욱 부추긴다. 그리고 많은 난해한 어휘들을 제조한다.

사람들이나 사회가 다 변화에 부정적이고 수동적이라서 한국은 늘 외부의 여건에 의해서 변화가 강제 되어 왔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바뀌어진 우리의 역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외부의 영향으로 엄청난 변화를 맞는다. 일본의 통치와 한국동란이 오래된 사회구조와 사회 환경을 극심하게 파괴하고 변화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되는 때를 맞는다. 더 나빠 질래야 나빠질 수 없는 여건에서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된다. 한국이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사회구조와 도시건축 환경이 완전히 파괴된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게 된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기적인 듯하다.

 

한국은 대전이후의 세계화, 민주화의 실질적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회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제는 온전히 세계의 경제에 속했을 때 성장했고 한국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발전은 온전히 바깥세상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폐허에서 이뤄낸 성장이 이제 그 끝에 이른 것 같고 세상이 안과 밖에서 다 바뀌려 하고 있다. 그동안 바뀌어야겠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바꾸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온 것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의 으뜸은 건축이다. 세계의 건축이 다 과거에 발을 담고 있지만 한국의 건축은 전형을 이미 있는 것에서 그리고 과거에서 찾으려는 것에서 벗어날 징조를 보이지를 않는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왜곡된 논리는 건축을 이해하고 즐기고 사용하는데 많은 혼돈을 주고 있다. 왜곡된 사실을 논리화 하다보면 그 언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것이 설명하려는 내용이 심오해서 난해해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 왜곡돼있어서 난해해 지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건축의 논리는 왜곡된 사실을 합리적인 듯 하려니 난해해진다. 삶과 죽음이라던가 어둠의 빛이라는 이상한 명제가 붙은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흔히 본다. 이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들에게서도 자주 보이는 일이다. 자연은 불변의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확신해서 땅을 신성시 하다 보니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그것을 내세우는 건축가는 없지만 건축가들은 으레 땅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많은 계획의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땅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땅만큼이나 기억이라는 단어는 한국 건축가들에게 인기있는 단어이다. 이제 전통이라 직설적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면서 그것을 좀 친숙한 언어로 바꾸어 부른다.

한국 건축가들은 건축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산물이고 그래서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여전히 기계가 만들어내는 정교함이나 성능보다는 사람의 손이 만들어 내는 것을 손맛이 있다고 선호한다. 옛날 선비가 누리던 귀족취향이다.

 

 

나는 한때 건축의 정성성을 정량화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나 그것을 하고 있는 나의 존재가치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그 가치를 들어내보이려는 치기이기도 했었다. 합리주의적인 현대사회에서 살다보니 모든 것이 논리적 타당성을 가져야만 그것이 옳고 그래서 모두에게 설득되어 진다는 진솔한 생각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정성적 가치를 정량화 하지를 못했고 지금 나는 정성적 가치는 정량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갖고 있다. 나도 그랬었지만 이 두 성격이 다른 가치를 한 가지로 생각하면서 우리는 엄청나게 부조리한 건축의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난해한 명제를 붙인 학교 프로젝트부터 그 결과가 늘 석연치 않은 현상설계까지 건축가들은 혼돈된 열정의 시간을 보낸다. 두 가지 가치의 혼재는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끝없는 논쟁을 만들고 있지만 건축에서 그것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매일의 건축가들의 생활을 지배한다. 건축의 정성적 가치의 본질은 그 건축을 계획하는 건축가에게서 비롯된다. 건축가의 지식뿐만이 아니라 그의 기호, 버릇, 능력, 그리고 그의 주위 환경 모든 것의 주체인 그를 통해서 건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들이 없듯이 같은 건축이 만들어지기가 힘든 것이다. 건축은 그것이 놓이는 땅이나 프로그램이 특정시기의 특정용도에 맞추기 때문에 특정하다기 보다는 그것을 보는 건축가들의 보는 눈이 다르고 그것에 대한 건축가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이 다름을 우리는 정량화해서 채점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이 건축가 개개인이 갖고 있는 차별성과 개별성에서 비롯된 만큼 그것을 평가하는 것도 보는 사람들에 따른 주관적인 개별성에 따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건축이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때 어떤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정된 몇몇이지만 아주 사랑하는 건축이 될 수도 있다. 단지 여기서 우리들은 좋아하던 아니면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것을 만든 건축가의 의도와 선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에서 공론화 되어야 하는 부분은 건축의 정량적 부분이다. 그런데 정량적으로 평가될 수 있고 객관화 시키어 일반적 해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 되는 부분은 건축의 관심에서 소외 되어왔다.

건축을 부동산이라고 하면 모욕을 느끼는 건축가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부동산으로 불리는 건축은 건축의 99%이상이다. 기술이 건축에 기여하는 것이 보이면 형이하학적 산물로 보고 평가절하 하려는 건축가도 있다. 하지만 건축은 항상 기술에 의존해왔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 되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이 부의 근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건축이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이를 부정해 버림으로 건축가들은 스스로 현실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이 문제와 연관되어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폄하함으로 건축은 현실에서 동떨어져 왔다. 기계가 동력을 얻어 동물의 힘을 빌리던 일의 양이 무한히 확대되고 시설이 동력을 얻어 생산이 무한히 늘고 이제 무한히 늘은 생산의 양 뿐만 아니라 그 종류를 다양하게 하기도 하고 그 생산을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 자동으로 맞춤 생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건축은 아직도 사람들이 필요한 것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들고 있다.

헌데 이제 새로운 기술로 모든 기존의 사회 구조와 산업구조가 그 실효성을 잃어가면서 변혁을 필요로 하는 변혁의 시기가 되었다. 건축도 물론 변화를 강하게 요구 받고 있다.

건축은 그것이 들어설 토지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과정이 너무나 비싸졌다. 건축가는 건축이 비싸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건축가는 정상적인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적은 비용을 받는 다는 것으로 이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작업하기에 필요한 비용은 사용자가 지불하기에는 지나치게 과대하다. 현장 중심의 맞춤 건설은 산업사회가 누리는 제조기술의 혜택을 멀리한 체 과대한 비용을 더 절감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건축의 소비자는 주거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생활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지만서도 주거비로 인한 부채부담으로 생활의 위협을 받을 사정이다. 고비용건축의 모든 것을 지불하고 그 산물을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건축의 비용을 알고 있다고 일반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력은 현장에서 집을 짓는 시공사 또는 개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건축가들은 이들을 업자라고 부른다. 사실 시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건축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 건설의 효율을 올리는 정도인데 그나마도 별로 개선은 보이지가 않는다. 그리고 개선을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설계는 건축의 형태에서부터 그 형태의 건축방법까지를 제한한다. 건축을 하는 방법은 그것의 형태와 그것을 건축하는 기술 두 가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건축의 형태와 기술은 건축의 비용과 밀접하다. 산업사회가 발전시켜온 생산기술, 기계에 의한 작업이 만들어내는 고효율 그리고 자동제어기술 이 모든 것은 건축의 비용을 현저하게 절약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설계에 의해서 계획되는 것이고 그래서 건축가가 주관해야 될 일 들이다. 건축을 정량적으로 분석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비용이다. 그리고 99%가 일상적인 생활비속에서 구매할 수 있는 비용까지 만드는 것이 그 목표가 될 수 있겠다. 건축의 미래는 누구나 구매가능한 건축이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기계제품이 갖고 있는 성능을 갖는 것이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제품이 되겠다. 에너지, 통신, 설비 등을 자족할 수 있고 그래서 독립적일 수 있는 것이다. 자족하는 건축들이 만드는 마을은 경제, 교육, 문화 등이 차별화 되고 개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건축은 민주주의 구현에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두렵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이제까지는 인류가 상상하지도 못하던 새로운 기술과 축척된 자본 및 문화를 갖고 있다. 누구나가 사용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미래가 가능하게 하는 생활 프로그램이 있고 현재가 제공하는 가장 우수한 기술이 만들어낸 건축가의 개별성이 보이는 그런 건축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이런 건축은 한국인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게 될 것이다.

지금 변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위험한 미래를 상상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때이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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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아이아크와 함께하는 한미글로벌!

한미글로벌 김종훈 회장님의 새로운 책이 출간하여 소식을 공유합니다~


책 제목은 "완벽을 향한 열정"




공학도 출신인 저자의 인생 스토리로서  학생, 청년, 젊은 사회인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클릭!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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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아이아크에서는 전하리 교회의 동탄성전 신축 프로젝트 설계가 한창 입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고생많은 팀원들을 위해 오늘 깜짝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교회 초등부 부터~ 청년부 까지 전하리 교회 교인들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선물이었습니다

다 읽으려면 추석연휴가 모자를 정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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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 하나하나 정성이 남긴 편지가!



한가위같은 마음이 전해지는 날입니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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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가 주최하는 "ARCH'PACIFIC-2016" 행사에 유걸 건축가가 초청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4월 25~30일간 열리며 다양한 전시 및 컨퍼런스와 워크샵을 통해 건축 전반에 대한 이슈 및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기간 중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에서 학생과 대학을 상대로 25일 오늘 강연이 있을 예정인데요 아래 강연 내용 중 일부 요약을 공유합니다!



Mass customization of Architecture

Creating and living in one's own is not only an act of joy but also is a basic right of individual human being.

Even though to have such a place is beyond reach for most of the people except few who can affort to do it.

Every Architectural process requires to survey the site, enalize the program and study the cultural and social context in which the project to be located. From planning to design and construction, the building process consumes long period of time and cost. Professionals in construction industry have been working hard to develop a cost effective system in design, manufacturing and construction field. Yet the rigidity of built nature and labor oriented industry has the limit to make it flexible enough to fit various need and want of different individuals and affordable to them.

General solution, instead of customized solution, is needed more than any time today.

The technological advancement of today, shed some light to formulate general architectural solution for people.

This general solution is not a same solution for everybody. The general solution could be more like a formula which could provide various results depend on the input of variables. These variables are the different needs and want by different individuals.

We also have automated fabrication technology which produce architectural component direct from design file.

We have all the tools to make the architectural solution general and fabricate it through automated production line. What we need to do it is to push the horizon of architectural understanding and broaden our imagination. Then every people will live in their own customized place.

 

Kerl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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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대만 국립교통대학교(National Chiao Tung University) 에서 두 분의 교수님과 9명의 학생들이 사무실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자오퉁대 두 분의 교수님이 학생들과 -Compare Seoul and Taipei in the view of “Sharing City” and “World Design Capital”- 라는 주제로 서울을 방문하셨고, 방문 일정 중 저희 사무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professor June-Hao Hou, Pei_Hsien Hsu>








  학생들의 작업 소개와 간단한 저희 회사의 소개가 진행된 후 자유로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작업소개는 단순히 페이퍼가 아닌 건축디자인이 사람의 삶에 어떻게 긍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보여줬던 시간이었습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국의 건축환경에 대한 비교도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통대 학생들의 방문으로 저희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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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서울경제 신문의 '건축과 도시' 에 카카오 스페이스 닷투, 닷키즈의 기사 실렸습니다.


건축물에 대한 소개 뿐 아니라 건축물이 지어지기까지 진행과정에서 실제 사용하는 직원들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어 발전이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도 있어 흥미롭네요!

아래 자세한 기사 보시죠^^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1511/e201511271759451419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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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청사가 유럽의 BRAUN publishing에서 편집 출간한 "Blob!: Round Shapes, Fluid Forms" 라는 책에 실렸습니다.  전세계에서 최근 6년간 실현된 프로젝트 중 'blob architecture' 라 할만한 건축물을 선정하여 모아논 책으로 11월에 발간되었네요! 국내에는 아직 정식 발간되진 않았지만 아래 amazon 에 실린 책 소개와 신청사 페이지를 사진으로나마 공유합니다!^^ 


The term "Blob Architecture" was first used in 1995 by Greg Lynn to describe biomorphic buildings, whose complex forms were created with the help of computers. Initially only used to describe organic, rounded objects "Blobitecture" today comprises and inspires many variations: from the classic, computer-generated blob to the experimenting with new, sprawling shapes, up to the combination with deconstructive elements or parametric architecture.
On the occasion of the twentieth anniversary of blob architecture, this volume features the best contemporary projects and provides an extensive survey of current developments. Buildings from all around the world are presented, created by famous architects and promising newcomers and ranging from large-scale projects to temporary installations. They all have one thing in common – even after twenty years blob architecture remains as freshly interesting and promising as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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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축신문 1면에 건축가 유걸의 '99%를 위한 건축가의 일' 이란 글이 실렸습니다.

아래는 그 전문입니다.



99%의 건축


많은 건축가들은 비싼 취미들을 갖고 있다. 특이하고 대중들에게 흔치 않은 비싼 취미들을 갖고 있는데 간혹 양반취미도 있다. 아마도 이는 건축가가 상대하는 건축주의 대부분이 일단은 경제적으로 성공했거나 경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건축가는 그들의 생활을 담는 환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취미일 것이다.  또한 특이하고 흔치 앟은 생각을 하다 보니 취미도 특이해진 것일 수 있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도 많다.  건축가의 이런 취미는 실무 작업을 통해 생기기도 하지만, 이미 교육과정에서 습득하기도 한다.  건축을 배우며 논의되는 대부분의 건축이 일상의 수준을 떠난 것들이고 보니 자연스럽게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삶이나 환경에 익숙해 지는 것 같다. 건축가들이 사회로부터 쉽게 유리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이런 중에 소위 좋은 건축으로 선정되고 알려진 건축들은 건축가의 비싼 취미를 더 부추기기도 한다. 그리고 건축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취미와 현실의 괴리에 불만스럽고, 낮은 가격에는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크게 좌절한다.  교육을 통해 의식화된 학생들이 건축 산업의 현장에 막상 들어가 이 괴리를 체험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99%는 건축가의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가?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하기 위하여 설계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이고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름이 붙은 건축은 세상에 지어지는 모든 건축물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건축가를 찾는 건축주는 시장의 원리에서 흔히 표준이 되는 2:82정도에도 못 미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지상에서 빈부의 차를 문제삼아 흔히 나오는 상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다. 그것이 건축가들이 일하고 있는 시장의 전부이다. 할 일은 적고 일을 하려는 건축가는 넘쳐나다 보니 건축가가 바라는 것은 늘 현실이되기 힘든 희망사항이고 수요 공급의 원칙은 건축가들을 점점 더 싼 소모품이 되게 만든다. 수천명의 응시자중 선별한 수백명만이 국가가 공인하는 건축전문인이 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선발 과정을 거쳐봐야 희소한 건축주들의 절대결정권에 운명을 거는 을의 신세가 될 뿐이다. 이러다 보니 이제 건축가는 없어지고 건축주는 더 저렴한, 심지어 무료의 디자인 서비스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들은 왜 상위 1%에만 그들의 운명을 거는 것인가?

  나머지 99%는 건축가들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땅에 뿌리내린 무거운 건축, 부동산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모든 건축의 기준과 방법은 이 상위 소수가 원하는 건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고비용이 필요한 것은 당연해 보이고 문제로 삼을 이유도 없다.  지금 건축의 기능성은 99%가 필요로 하는 보편적인 것이기 보다는 소수 건축주의 특수한 필요로 이해되고 있다.  내구성은 용도보다는 시대를 넘어서는 오랜 수명으로 간주한다. 또한 아름다움이 건축가의 취미와 혼동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이해된 건축은 자연스럽게 무거워 질 수밖에 없으며 건축이 무겁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무거운 건축은 무게 만큼이나 땅에 깊이 뿌리내려 부동의 것이 되어 '부동산'으로 불리는데, 정작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극히 혐오하며, 대신 여러 가지로 미화한다.  가령 건축의 지역성이라던지 맥락적 이라는 것으로 정당화 한다.  하지만 특수 용도를 위한 것, 기념적이고 선택된 소수의  취미를 반영한 건축은, 앞서 미화하기 위해 가져온 지역성이나 맥락성관느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건축가는 희소한 일을 차지하기 위하여 피나게 경쟁하게 되고 가난하게 일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소수의 사람을 위하고 특수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매번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하는 건축설계는 그 과정과 결과물 모두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매번 받은 비용이 부족하고 그 부족한 비용 마저 건축주들은 더 낮추어 버린다. 건축가들에게 야근과 철야는 일상이고 간혹 밤샘근무를 자랑하기도 한다.  언제까지 소수를 위한 고비용의 건축에 집중해야 한느가?  99%가 범용할 수 있는 건축의 일반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특수해에서 일반해로

건축가 없이 만들어진 토속 건축들은 대체적으로 지속 가능하다. 한옥을 보더라도 방과 마루가 있고 기능적으로 특화 되어 있는 공간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집과 창고의 구분이 있을 뿐 집은 방과 방 그리고 마루 뿐 이다. 공간의 개폐나 통합 분리가 자유롭게 되어 있어 사용상의 융통성을 극대화 하기도 한다. 융통성을 중심으로 한 범용성은 여러모로 연구되고 시도되어 왔다. 사용자 중심의 범용성의 또 다른 형태는 소위 DIY (Do it yourself)같은 형태이다. 사용자에게 다양한 선택이 제공되고 또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선택의 자유를 갖고 또 각자의 창의적 상상력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건축적 모형이 아닐 수 없다. 건축가 없는 건축들은 다들 일종의 DIY 이다. 건축 재료를 자연에서 공급 받고 일반 사용자들이 건축 구축의 방법들을 알고 있어서 스스로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협업으로 환경을 유지 보수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건축가들의 관심 밖에 살고 있는 99%도 경제의 발전과 아울러 향상 된 생활환경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마련이 되어있는 환경에서 경쟁적으로 더 편하고 더 좋다는 환경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좋은 환경의 배후에는 비싼 대가가 있다. 건축의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거의 소유자나 사용자들은 다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지고 살아가지만 자기 결정권도 부제하고 남과의 비교경쟁에 의해서 만들어진 환경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주거비를 위해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가 않다. 1%를 위해 일하는 건축가나 이들 건축가의 관심 밖 의 99%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공통이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이나 삶에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선택이 없이 필요에 의해서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다해석 공간이 가져오는 능동성

나는 내 성격 때문에 비롯되기도 했지만 '열린 공간'을 열심히 주장하여 왔었다. 열린 공간은 무엇보다도 일단 시원하고 속박하지 않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결정된 프로그램 속에서 특정 기능이 없는 시원한 열린 공간을 극대화 하는 것은 내 작업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 공간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다목적 공간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것을 '다해석 공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다목적 공간이 중성적 성격이 있다면, 다해석 공간은 사용자들이 그 성격을 자신들이 원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술이 급속히 보급이 되고 있는 요즘 나의 생각은 사용자가 공간을 자기에게 맞게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그것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로 가능해진 99%를 위한 범용의 건축

건축계획은 건축물의 생김새 뿐 만이 아니라 그것이 세워지는 방법까지도 포함한다. 건축가는 건축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건축계획에서 건축물을 짓는 일이 건축설계에서 따로 분리될 수가 없는 일이고 건물을 짓는 기술은 건축의 내용 만큼이나 중요하.  오늘날 비약적으로 발전한 각종 기술은 건축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첨단 기술은 건축가들이 건축의 전 과정을 다시 관장할 수 있게 해주고, 동시에 99%를 위한 범용의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준다 이는 건축 과정에서 중간 공급자의 비용을 제거할 뿐 만이 아니라 건축자재의 비용까지도 낭비가 없게 하여 사용자들의 비용지불부담을 일반 소비재를 구매하는 수준으로까지 낮추어 준다.  그때는 건축이 하나의 소비재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결정권을 갖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창의적으로 만드는 세상을 상상이 아닌 현실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건축의 수요자에게만 바람직한 삶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99%를 위한 일을 통하여 건축가들의 일은 99배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1%를 위하여 생존을 위협받으며 경쟁하던 건축가들에게 시장은 99배 까지 아니더라도 9는 넘게 확장될 것이 분명하다. 특수해를 위해 헌신했던 시간과 정력이 범용을 위해 쓰일 때 그 보상은 쉽게 배가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건축가가 99%를 위해 바빠지면 1%는 건축가를 초청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될 것이다. 자기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원하는 건축주는 지금의 9배 정도는 지불해야 일할 건축가를 찾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건축가의 서비스가 자동화나 전자제품의 설계자 서비스 이상의 보상을 받길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느 것이 가능한 여건에서 일하고 싶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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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05


금일 오후 2시

건축사협회 사옥 1층 대강당에서

건축문화대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다음스페이스 닷 키즈'

대표로 오서원 파트너님이 시상식에 참여하셨습니다.


아래는 시상식 사진입니다.





시공사와 건축주에게는 국토교통부 장관상이 수여되었습니다.

계룡건설산업과 카카오 관계자 분들께서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아래는 수상 소식과 스페이스 닷 키즈의 정보,오서원 파트너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어린이집을 설계함에 있어 건축가로서 고민한 부분,

기존의 어린이집과 보다 나은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한 노력,

제주도의 풍부한 자연환경과 어린이집과의 관계에 관한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1511/e20151104194931141970.htm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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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8 


2015 한국복잡계학회 가을 학술대회

시간 :  'Invite Talk' session (10:00~11:50)

장소 :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국제관 지하2층


한국복잡계학회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상들에 대해 자연과학, 사회과학, 경영경제학, 인문학 및 예술 등의 융합적 견지에서 논의를 지속해 왔습니다.

이번 2015 한국복잡계학회 추계 학술대회는 '발전과 갈등(Progress&Conflict)' 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집니다.


유걸 건축가는 이번에 'Invite Talk'  section 에서 초청강사로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 외에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주제로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전 아이아크 파트 하태석 건축가도 '문화예술' 세션에 초빙되어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아래 프로그램 표과 함께 사전등록 링크를 통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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