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뮤인 8월 호에 유걸 선생님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전히 실험하고 배우는 70대 건축가


보통 나이가 들면 뉘우치고 한탄한다. 그때는 기회가 있었지만 몰랐고, 지금은 알지만 기회가 없어서다. 그에게는 회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실험하며 배우고 있고, 기회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한국 현대 건축의 최전선에서 현역으로 존재하는 70대 건축가, 유걸이다. 

에디터 김만나 포토그래퍼 이승택 건축 사진 제공 아이아크 건축설계사무소

 

오는 10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서울시 신청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생각해보면, 하나의 건축물을 두고 이렇게 말이 많았던 적 있었나 싶다. 대중이 모르는 사이 너무나 쉽게 사그라진 아까운 건축물들이 많았고 그래서 유걸 건축가는 하나의 건축물에 이런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긍정적인 관심이면 행복하겠지만, 부정적이라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는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좋다가도 싫어지는 게 있듯, 부정적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시 신청사 건축물의 내용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관심으로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서울시 신청사를 설계한 아이아크 건축설계사무소의 건축가 유걸. 신청사 논란에 대해 그는 덤덤한편이다. 그가 본질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열린 공간’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실현이 되었고,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예상한 터였다. 언젠가는 드러날 한국 건축계의 고질적인 문제, 오히려 공론화되길 바랐던 그다. 오늘의 논란은 2008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서울시 신청사 프로젝트는 ‘턴키’ 방식으로 진행됐다. 턴키는 사업주가 건물의 설계?시공?감리를 한꺼번에 맡겨 짓는 방식으로, 상업 건물은 몰라도 다양한 용도를 충족해야 하고 문화적 의미가 중요한 공공 건축물에서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건축가 유걸은 계획을 실체로 구현하는 실시설계 단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디자인만 주고, 제품의 제작에는 관여하지 못한 셈이다. 원래 의도라면 신청사의 내부가 밖에서 투명하게 보여야 하는데, 구현되지 못했다. “7층 높이의 수직 벽을 타고 올라가는 그린 월도, 에스컬레이터도, 공연 공간도, 시설물을 서포트하는 구조까지도 밖에서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차단됐단 말이죠. 내부 공간은 있으나 이를 보여줄 디자인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셈이죠.”


그는 한국의 건축, 아니 건설 산업은 ‘건축가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있다고 말한다. 설계자가 감리를 할 수 없는 계약 방식 말고도 불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폐해는 ‘현상설계공모’다.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틀린 것을 찾는 데 집중하고, 가장 적게 틀린 작품을 당선시키는 현상설계는 ‘건축가’가 아닌 ‘건축물’을 찾는 방식이다. “건축가가 그간 어떤 작업을 했고, 어떤 철학을 갖고 있고, 이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풀 것인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부합하는 건축물을 누가 적은 금액으로 만드나를 찾는 거죠. 결국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하나도 좋은 게 없는 건물들이 일률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거에요.”


파인 아트가 날카로운 촉수로 사회를 비판하고 드러낸다면, 건축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속성 때문이다. 고로, 지금 한국 사회의 건축을 보기 위해서는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건축 프로젝트를 보면 된다. 용산국제업무지구다. 총 공사비 3천억 원이 든 대규모 프로젝트가 서울시 신청사지만, 용산 프로젝트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총 사업비 28조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기본 계획이 끝나고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언론도, 건축계도, 대중도 무감각하다. 용산을 국제업무기능을 하는 서울의 부도심으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프로젝트로, 외국의 이름난 건축가는 모두 한 자리씩 꿰찼다. 물론, 그들이 진짜 명품일 수도 있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했을 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생각해보면 답은 쉽다. 제 잘난 모습들을 드러내려 아우성일 것인데, 이대로 진행된다면 정말 세계에서 유례없는 도시가 탄생할 것이다. 용산 프로젝트에 제출한 설계안 중 높이 100미터가 넘는 초고층 빌딩이 10개가 넘는다. “기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높이로 표현하는 욕망의 결과물이죠. 도시화, 고밀도가 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폐쇄된 채로만 존재하는 초고층 빌딩은 19세기 방식이에요. 도시의 좋은 점은 ‘선택’이 많다는 것이에요. 무용이나 연극, 영화도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도 먹을 수 있죠. 행동에 선택의 자유가 있듯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죠. 옆 골목으로 빠졌다 다시 나올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죠. 이런 선택이 제한되는 곳이 막다른 골목, 영어로는 ‘데드엔드(Dead end)’죠. 초고층 빌딩이 사람들에게는 데드 엔드이고, 공간적으로 보면 섬처럼 유리된 장소죠. 그걸 지금 집중해서 용산에 짓고 있는 것이죠. 맨하탄이 형성된 것이 1900년대 초인데 이미 1백년 전에 했던 것을 답습하고 있단 말이죠.”


이쯤에서 신청사를 다시 보자. 신청사는 다양한 선택을 입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기본 컨셉트다. 서울 광장과 같이 광장의 기능을 하는, ‘수직 광장’이 기본 형상이다. 수직광장 위에 공용 공간을 띄어 놓았는데, 그 안에는 콘서트홀, 전망대 그리고 이 둘을 잇는 라운지가 존재한다. 후면부의 업무 공간을 제외하면 건물 구석구석 역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내외부의 경계가 자유롭고, 동선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 건축가 유걸에게 있어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주인은 공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의 자유다. 소유자의 소유권을 내세우는 듯한 폐쇄적인 건축물의 정반대 지점에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신청사는 아직 10%도 완성되지 않았다. 시간과 그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90%를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온 사람도 늘 오던 곳처럼 친숙하게 느끼고 방문자가 자신의 공간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열린 공간이라 생각해요. 무한한 선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경희대전문대학원은 아주 저렴하게 공간을 리노베이션한거란 말이에요. 가보면 학생들이 계단에서 파티도 하고, 노래도 하고, 논쟁도 한단 말이에요.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하게 공간을 쓰는 거에요. 그러면 아주 좋은 거에요. 그것까지 내가 설계를 한 건 아니니까요.”

 

혁신으로 통하는 아이아크, 그리고 유걸
 “1960년대 비저너리(Visionary) 건축가들이 제안한 게 많아요. 고층은 고층인데 서로가 연계된 ‘공중 도시’ 개념이죠. 올라갔지만, 다른 곳으로 내려올 수 있고 입출구가 자유로운 곳. 당시는 불가능했지만 21세기의 기술과 21세기의 자본, 21세기의 재료들은 충분히 공중도시의 이론을 만들 수 있단 말이죠. 그게 가능한 것이 지금의 한국이죠. 프랑스나 독일은 그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송도, 청라 지구, 용산… 지금 한국은 새로운 기회를 찾는 동력의 크기가 엄청나게 빠르고 큰데 이 에너지를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을 것이냐.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외국의 그 어디에서 없었기 때문에 롤 모델을 찾을 수 없어요. 처음부터 새롭게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죠.”
건축가 유걸의 아이아크는 건축계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로 통한다. 그들의 작업에는 단순한 디자인 형태를 가진 것이 거의 없다. 3차원 설계시스템을 적극 도입 등 복잡한 형태의 디자인을 풀어낼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결과다. 인천세계도시축전기념관(트라이 볼), 판교 하우징, 한남동하우징 등이 그러하다. “트라이볼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가져갔다가 못 짓겠다고 의뢰를 해서 끝날 때까지 저희가 참여했죠. 그 때 설계할 때 쓴 툴이 비행기 설계할 때 쓰는 프로그램이에요. 사무실에 있는 친구 두 명이 프로그램을 배워가면서 6개월 동안 만들었죠.”


유걸은 한국 건축계에서 특별한 지점에 있다. 대부분 그의 나이가 되면 중역을 맡거나 은퇴를 하지 현역 리그에서 뛰는 사람은 드물다. 비슷한 연령대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이는 조성룡 건축가가 있지만 그와도 다른 것이 유걸 건축가는 아이아크와 같이 45명 규모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한번에 10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속에서 그 역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다. 그는 과거에 많이 일하지 않아서 지금 하고 있다, 고 말한다. 유걸은 다른 동년배 건축가에 비해 데뷔가 늦은 편이다. 한국 건축계에서 제대로 주목을 받은 것도 1995년, 밀알학교를 통해서였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김수근 건축사무소에 들어갔던 그. 당시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엘리트 코스였으나 그는 건축 물을 설계하지 않았다. 조성룡 건축가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김원 건축가가 코엑스와 같은 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때도 그는 잠잠했다. “우규승, 김원, 조성룡. 우리 제네레이션이 엄청나게 일을, 일만 많이 한 세대에요. 그들에게 일에 치였었다고 내가 그래요. 나는 일에 치이지 않은 사람이에요. 당시만 해도 마흔이 되기 전에 내가 그린 그림으로 집이 지어진다는 것에 영 자신이 없었다랄까. 그래서 마흔이 되기 전까지 김수근 선생 사무실에서 계획 설계만 했었어요. 돌이켜보면 이론적으로, 분석적으로 일을 배웠던 시기였죠. 그 때 이후로 어떤 건축가와 일을 할 때도 프로젝트를 객관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미국에서는 또 다른 건축 공부가 시작됐다. 영어를 못하니 엄청 그렸다는 그다. 트레싱 페이퍼를 하루에 한 롤 다 썼을 정도. 회의할 때는 대화가 안되니 정면, 측면, 내부까지 모두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었다. 비주얼라이징에 자신 생긴 것은 그 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무실에 있다 답답해서 한동안은 밖에서 집을 짓고 다녔어요. 설계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짓는. 그래서 땅 파는 것에서 마지막에 가구 놓는 것까지 자신이 있어요. 지금도 무엇을 설계하면 어떻게 지을지 다 눈에 보여요. 생각을 구체화하고, 스케치하고, 집 짓는 과정이 인생 곳곳에 존재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교육 받으려 해도 못할 것 같은데 그게 굉장한 자산이죠.”


생각만 하면 공회전이 될 뿐이다. 그려야 디벨롭이 된다. 생각하고, 그리고, 만들고를 반복해온 유걸 건축가다. 그가 지나온 삶을 들어 보면,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냉혹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60세가 되어 3년 연속 ‘미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고 한국에서 김수근 문화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주저 없이 꼽히지만, 정작 그는 “건축은 70부터”라 말하는 것 같다. 그가 건축가를 위해 준비했던 길었던 시간을 보면,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대학 막 졸업하고 김수근 건축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제일 처음 김수근 선생이 해보라고 했던 게 제헌회관이었어요. 남산타워 맞은편에 있었던. 흙을 사다 신나게 빚으며 만들었다고.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 선생이 와서는 ‘와, 이게 뭐지, 재밌네?’ 잘하는 줄 알고 신나서 2주간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이거는 자네 사무실 하면 만들어, 나는 이런 거 못팔아, 이거 사진 찍어가지고 보관해’ 하는 거에요.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이건 건축이 아니구나. 그 뒤로는 한 번도 김수근 선생한테 내 조형감각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아주 이론적으로만 분석하고 이성적인 작업만 했었다고.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김수근 선생이 있으면 참 좋겠다. ‘자네 사무실에서나 이런 거 해’라고 했는데 ‘이런 거 지금 합니다’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위 글와 이미지는 잡지사 뮤인의 에디터 김만나 포토그래퍼 이승택 과 아이아크 건축설계사무소의 자료이므로 무단 복제 및 편집을 금합니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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