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크의 유걸 파트너의 집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ANnews(http://annews.kr/)의 칼럼입니다.

평안 하냐구요?

한국주거의 문제는 그 많은 주거들이 획일적인 것에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모양으로 살고 있게 되었나 싶다.

그리고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같은 모양의 주거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좀더 크고 좀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수요자들을유혹하고 또 이에 따라 쉽게 유혹되고 동경까지도 하게 되는 일반 세태인 것이다. 우리가 비바람을 막기가어렵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래도 좋은 부엌에 편한 살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경이스럽게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하나 같이 쏠려가는 것을 보노라면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주거 문화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먼저 생각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거들이공급 되고 있을 때 수요자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서울이 올림픽을 준비할 때선수촌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놀라웠던 것은 세대가들어가는 단지가 다섯가지 미만의 유형으로 구성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최소 천여 세대가 같은 유형 공간의제약속에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나마 위치에 따라 서로다른 환경이 만들어지겠는데 추첨을 통해서 자기가 살집이 결정되는 것을 볼때에 수요자는 이미 자기 생활의 터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여지를여러모로 포기 하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 많은 한국인들이 획일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데는 지금까지 지어진 맣은 집들을 짓는 방법 그 원인이 있다. 방과 방이 콘크리트로 나누어져 있고 집과 집 그리고 전체가 하나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고 보니 쓰다가 좀 생활이바뀌어 집을 바꾸어 보려고 해도 바꿀 수단이 쉽지 않다. 식구가 줄게 되어 방을 하나 다른 용도로 바꾸려해도 벽을 건드릴 수는 없다. 소위 가변성이 전무이다. 요즘회자가 되고 있는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공간의 가변성은 첫 번째로 필요한 건축물의 성격이다. 가변성은포기한다 하더라도 건축물의 마감이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 조차 또한 쉽지가 않다. 모든 것이 일체식으로 되어 있어 무엇을 바꾸려 하면 건물을 부셔야 하게 되어있다.

난방을 바꾸려면 바닥을 뜯어야 되고 배선을 바꾸려 하면 벽을 뜯어야 한다.

부엌이나 욕실을 바꾸려 하면 기본적으로 부엌과 욕실의 바닥이나 벽을 다 부셔야 할 판이다. 건축물의성능 향상이 아니더라도 선반을 새로 설치하거나 벽에 그림을 하나 걸려고 해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할 수가 없이 되어있다.

잘못하다가는 콘크리트벽에 커다란 흠집만 남기기가 일쑤다. 그래서 집을 조금만 바꾸려 해도 기술자나 기능공을 불러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바꾸기를 포기하고 처음 지어준대로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건물들을재개발이니 재건축을 하게되었다고 온통 축하분위기를 띄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렇게 건물이 가변성이 없고 마감이나 성능을 지속적으로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된다.

한국인들이 획일적인 주거환경에서 살아가게 되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이유는 건축가들이 엄청 노력한다면 좀 개선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주거 공간을 개발하고 다양한 단위주거를 여러모양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리고 사용자가 쉽게 바꾸거나개선을 할 수 있는 건축방법과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좀 더 넓은 선택의 폭을 갖게 되고 또 스스로가 자기의 삶에 맞도록 자기집을 개선하거나꾸밀 수가 있게 되겠다. 그러면 왜 이런 개선이 없고 그 많은 한국인들은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것인가. 주택시장의 경제논리 특히 공급의 주체가 되고 있는 건설회사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도중요한 이유가 되겠지만나는 문제가 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같은모양으로 살면서 바꾸지 않는 것이 한국의 문화적 성격에서 연유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정수복 교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만드는 요인을 한국인의집단주의와 현세주의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없이는 보편주의가 있을 수 없고 그래서 소속된 집단에 충실한 특수주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개인주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의 중심적 요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국에서 궁극적으로 받아들여 질수가 없다. 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남과 다르기가 쉽지가않고 남과 같은 것에 불편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힘을 잃은 과거의 도덕적 규범을 대체할새로운 규범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기주의나 또는 집단의 이기를 개인의 존엄성으로 존중하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 가는 실존적 주체를 이기주의자라고 오도하기도 한다. 개인에대한 이해의 혼돈과 집단문화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택공급도 사업이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집"이라는 책을 쓴 팬실바니아 대학의 위톨드 리브진스키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내가 지은 나를 위한 집이라고 하였다. 올림픽선수촌 설계와 감리에 참여를 하면서 한동안 빌린 집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서울의 집들의 견고함이나 편리성이 다른 나라의 주거에 떨어지지 않고 더러는 나은 점도 많다. 그러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방을 바꾼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대로 방을 꾸미지 못하고 살았던 그때의 생활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그래서나는 지금도 셋방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설움을 이런 면에서도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나를 위하여 꾸민집이 나에게 가장 좋듯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집을 자기를 위하여 꾸밀 수 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에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만들어 질 수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는 집 장사라고 하여 동네의 단독주택들을 지어서 파는 일들이 많았는데 방배동의 어느 골목에서 한 집 장사의 집 대문이 온갖 색깔의 세라믹 타일로 온통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가우디의 건물이 연상 될 만한 그러한 것은 되지 못했지만 지은이의 자기화 하는 열성만큼은 충분히 읽힐만 했다. 사실 이만한 자기 표현은 건축가들의 작품에서도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남이좋아할 것, 남들이 좋다는 것에 나를 함몰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실 자기화나 내가 살 나의 환경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건축은 그것이 어떻게보이느냐를 문제로 삼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과제의 중심을 건드린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축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강제하지는 않지만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권고하고 있다. 모두들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개인들 이면서도 이들의 참된삶의 주체가 됐을 때 그들의 모임에는 보편성이 이해될 수 있고 공통의 가치를 위한 대화가 가능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럴 때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살면서도 서로가 관계를 갖게 되고 연관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집은 평안해 보이게 될 것이다

Posted by i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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